전북 진안군은 천혜의 자연 환경을 가진 고원지대로, 예로부터 한방과 치유의 땅으로 불려 왔습니다. 이런 진안군 마령면의 작은 마을에도 한때 아이들이 모여들던 ‘마령초등학교’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농촌 인구 감소로 2010년에 문을 닫은 이후, 한동안 방치되어 있던 이 폐교가 최근 ‘자연 기반 치유 문화공간’으로 다시 문을 열었습니다. 이 글에서는 ‘마령초’가 어떤 과정을 거쳐 사람을 치유하는 문화기지로 탈바꿈했는지, 그리고 그 공간이 어떻게 마을의 시간을 다시 흐르게 했는지를 따라가 봅니다.
‘마령초등학교’에서 ‘치유의 숲 문화센터’로
마령초등학교는 한때 진안군 마령면 일대에서 가장 중심이 되는 교육기관 중 하나였습니다. 그러나 도시로 빠르게 이동한 젊은 세대와 급격한 출산율 저하로 인해 학생 수는 지속적으로 감소했고, 결국 2010년 문을 닫게 되었습니다. 이후 10년 가까이 아무도 찾지 않는 이 공간은 시간이 멈춘 듯 조용한 폐교로 남아 있었습니다.
전환점은 2018년, 진안군과 전북문화관광재단이 ‘농촌형 치유문화시설’ 시범사업으로 이 공간을 지정하면서 시작되었습니다. 이 사업은 폐교 공간을 단순히 전시·교육 장소로 바꾸는 것을 넘어, ‘자연을 통한 심리적 회복’과 ‘문화적 치유’를 융합한 공간으로 전환한다는 목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리모델링을 통해 기존 교실은 아로마 테라피 강의실, 명상 및 요가 공간, 농촌식 치유식단 체험관 등으로 바뀌었고, 도서관과 상담실이 결합된 복합 힐링라운지가 신설되었습니다. 교정은 숲 체험 및 산책을 위한 자연 치유숲으로 조성되어, 계절에 따라 다양한 프로그램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이곳은 단순한 교육·관광 공간이 아닌, ‘자연 기반 치유 공간’으로 폐교를 재탄생시킨 국내 보기 드문 사례입니다.
몸과 마음을 쉬게 하는 공간, 치유 프로그램의 확장
‘치유의 숲 문화센터’라는 이름답게, 이곳에서는 다양한 자연 치유 기반 프로그램이 운영되고 있습니다. 특히 스트레스 완화와 감정 회복에 중점을 둔 프로그램은 중장년층과 여성 방문객에게 큰 인기를 얻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프로그램으로는 ‘나무와 함께 걷기’, ‘오감 자극 명상’, ‘치유글쓰기 워크숍’ 등이 있습니다. 참가자들은 이곳에서 스마트폰을 잠시 내려놓고, 숲의 소리를 듣고, 몸의 감각을 깨우며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을 갖습니다.
특히 ‘치유글쓰기’ 프로그램은 폐교의 역사와 연계되어 더욱 특별한 의미를 갖습니다. 교실 한편에는 이 학교를 다녔던 졸업생의 편지와 교사들의 수기, 마을 주민의 시가 전시되어 있어, 단순한 감성 체험을 넘어 기억과 연결된 정서적 회복이 가능하게 구성되어 있습니다.
치유음식도 이 공간의 핵심 중 하나입니다. 지역 주민이 직접 재배한 약초, 제철 채소를 활용한 ‘진안형 한방 밥상’은 단순한 식사가 아니라, 치유의 일환으로 제공되며 방문객들의 큰 호응을 얻고 있습니다. 마령초에서 운영되는 ‘건강 밥상 체험 프로그램’은 마을 부녀회가 주축이 되어 직접 음식을 준비하고 운영하는 방식으로, 마을 경제에도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
이렇듯, 이 폐교는 몸과 마음을 동시에 돌보는 복합 치유 공간으로 자리 잡고 있으며, 단발성 행사가 아닌 연속성과 전문성을 가진 체험 중심 공간으로 진화 중입니다.
귀촌 청년과 지역 주민이 함께 만든 마을 공동체 모델
‘치유의 숲 문화센터’의 운영 주체는 진안군이지만, 실제 공간을 움직이는 주체는 마을 주민들과 귀촌 청년들입니다. 처음에는 외부 전문가가 중심이 되었지만, 지금은 귀농·귀촌을 택한 청년 기획자들이 마을 어르신들과 협력하여 공간 기획과 프로그램 운영을 함께 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서울에서 미술치료를 전공하고 진안으로 이주한 한 청년은 이곳에서 ‘감정 드로잉 워크숍’을 기획해 매달 운영하고 있으며, 마을 어르신과 아이들이 함께 그림을 그리며 대화하는 시간을 만들고 있습니다. 또 다른 청년은 ‘숲 속 북콘서트’를 열어 인근 지역 예술가들과 함께 폐교 교정을 작은 공연장으로 바꾸기도 했습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점은, 이 공간이 주민들에게 단순히 "보기 좋은 공간"이 아니라 "함께하는 공간"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프로그램 운영에 참여하는 어르신들은 방문객에게 마을 이야기를 들려주며 자긍심을 되찾고 있고, 외지인과의 접촉이 많아지면서 마령면 일대는 점점 더 열린 커뮤니티로 변모하고 있습니다.
또한 진안군은 이 모델을 확장하여, 향후 1~2개의 폐교를 추가로 문화·치유 공간으로 연계 운영할 예정입니다. 마령초의 성공적인 전환이 이러한 확장의 기반이 되고 있으며, 실제 방문객의 재방문율도 60%를 넘을 정도로 높습니다.
이처럼 한 공간의 재생이, 지역 전체의 인식을 바꾸고, 관계의 지형을 다시 그리는 기회가 된 것입니다.
마무리: ‘사라진 학교’가 전하는 느림과 회복의 가치
진안 마령초등학교의 변신은 단순한 ‘공간 재활용’이 아닙니다. 그것은 속도 중심의 도시 생활에서 벗어나, 삶을 되돌아보게 만드는 느림의 공간, 사람과 사람이 연결되는 공감의 공간, 그리고 몸과 마음이 회복되는 치유의 공간이 된 것입니다.
폐교는 더 이상 실패나 쇠퇴의 상징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 안에 담긴 기억, 구조, 사람들을 다시 조명하고 확장해갈 수 있다면, 가장 의미 있는 변화의 플랫폼이 될 수 있습니다. 마령초가 걸어온 길은 그 가능성을 실증해주고 있습니다.
조용한 숲, 오래된 나무, 예전 교실의 칠판, 그리고 마을 어르신의 따뜻한 손길. 이 모든 것들이 함께 어우러져 지금 마령초는 과거를 품은 현재의 안식처로 살아 숨 쉬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