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남도 고성군 마암면의 한적한 바닷가 마을, 이곳의 ‘마암초등학교’는 오랜 시간 지역 아이들의 삶터이자 놀이터였습니다. 그러나 도시로 떠나는 가족이 늘어나면서 학교는 결국 2012년 폐교되고, 오랫동안 비어 있던 이 공간은 어느새 마을의 고요한 그림자처럼 잊혀져 갔습니다. 그러던 중, 이 폐교가 ‘해양 생태 교육과 체험의 장’으로 거듭나면서 아이들과 지역 사회 모두에게 새로운 숨결을 불어넣고 있습니다. 이 글에서는 마암초가 어떻게 다시 살아났는지, 그리고 그 공간이 지역 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를 따라가 봅니다.
사라진 학교, 다시 시작된 교실 — 마암초의 변신 이야기
경남 고성군은 바다와 맞닿은 지역 특성상 수산업이 주된 산업이었으며, 아이들 또한 갯벌과 바다를 놀이터 삼아 자라던 마을이 많았습니다. 마암초등학교도 그런 공간 중 하나였습니다. 하지만 인구 감소, 교육시설의 통폐합, 청년층의 도시 이탈이 겹치며 2012년 폐교되었고, 학교는 3년 넘게 아무도 드나들지 않는 공간이 되었습니다.
이 변화에 주목한 것이 바로 고성군과 경상남도 교육청, 그리고 지역의 어촌체험마을 운영위원회였습니다. 이들은 ‘학교가 바다로 이어지는 교육 공간이 될 수 있다’는 기획 아래, 폐교를 해양 생태 체험 교육관으로 리모델링하는 프로젝트를 시작했습니다. 이 과정은 단순한 물리적 리모델링이 아니라, 지역 자원을 활용한 콘텐츠 기획과 주민 참여를 바탕으로 했다는 점에서 주목받았습니다.
이후 2016년부터 ‘마암 해양생태 체험관’이라는 이름으로 문을 연 이곳은, 초등학생부터 중학생까지의 단체 수련 및 생태교육 장소로 자리매김했습니다. 예전의 교실은 갯벌 생물 전시관, 해양 쓰레기 문제를 주제로 한 교육실, 바다 생태 시청각 자료실 등으로 바뀌었으며, 운동장에는 직접 갯벌 체험 후 손을 씻고 정리할 수 있는 세척장이 들어섰습니다.
단지 건물을 재활용한 것이 아니라, 학교라는 장소성 위에 지역의 정체성과 자원을 덧입힌 이 사례는 폐교 재생의 창의적 모델로 인정받고 있습니다.
갯벌이 교과서가 되다: 생태 교육의 살아있는 현장
마암 해양생태 체험관의 가장 큰 특징은 ‘살아 있는 해양 교육’이 가능하다는 점입니다. 이곳에서는 단순히 책이나 영상으로 바다 생태계를 설명하는 데 그치지 않고, 실제 갯벌에서 생물을 관찰하고, 해루질을 해보며, 수질 상태를 측정하는 등의 활동 중심 교육이 이루어집니다.
예를 들어 ‘갯벌 속 친구들’이라는 프로그램은 아이들이 갯벌에 직접 들어가 조개, 게, 갯지렁이 등을 채집한 뒤 교실로 돌아와 현미경으로 관찰하고 생태 정보를 기록하는 활동입니다. 이 과정에서 학생들은 해양 생물의 다양성과 바다 생태계의 소중함을 몸으로 익히게 됩니다.
또 다른 인기 프로그램은 ‘플라스틱 바다’입니다. 바다에 버려지는 폐플라스틱의 심각성을 보여주는 전시와 함께, 해양 쓰레기를 주제로 한 업사이클링 체험도 병행됩니다. 아이들은 해양 환경 문제를 체감하고, 지속가능한 삶에 대한 고민을 스스로 해보는 계기를 가지게 됩니다.
이러한 교육 프로그램은 고성군 내 학교들뿐만 아니라, 인근 진주, 창원, 사천 등의 교육청과도 연계되어 있어 지역 내외 초·중등학교의 체험학습 장소로 꾸준한 수요를 얻고 있습니다. 마암초는 물리적으로는 폐교되었지만, 가장 적극적으로 ‘교실의 기능’을 수행하는 공간이 된 셈입니다.
마을이 함께 만든 공간, 지역을 되살리다
마암초의 변화는 단지 교육의 변화만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 공간을 중심으로 마을 전체가 조금씩 다시 살아나고 있다는 사실이야말로 가장 큰 변화입니다. 학교 운영과 프로그램 구성에 마암면 주민들이 직접 참여하고 있다는 점이 핵심입니다.
어촌체험마을 위원회는 이 체험관을 중심으로 지역 농수산물 판매 부스를 운영하고 있으며, 행사 시기에는 마을 부녀회가 직접 만든 전복죽, 해물 파전 등을 판매해 방문객들에게 식사를 제공합니다. 이 수익은 지역 마을 기금으로 적립되어 마을 노인복지나 아이들 장학금에 쓰입니다.
또한 마암초를 방문하는 외부 단체를 대상으로 민박 형태의 숙박 연계 서비스도 시작되었습니다. 이는 주민이 직접 집을 정비하고, 식사를 제공하는 방식으로, 외지 체험객들이 마을에서 하루 이상 머물 수 있는 체류형 생태 관광 모델로 발전하고 있습니다.
마암면은 과거 ‘노령화 마을’이라는 이미지에서 벗어나, 지금은 ‘체험이 있는 교육 마을’, ‘아이와 환경이 함께 숨 쉬는 바닷가 마을’로 인식되고 있습니다. 이 변화는 누구 하나의 노력으로 된 것이 아니라, 폐교 공간을 매개로 주민과 행정이 긴 시간 함께 만들어낸 결과물입니다.
마무리: 폐교가 지역을 가르친다
폐교는 과거의 끝이지만, 새로운 미래의 시작이기도 합니다. 고성 마암초등학교는 이제 더 이상 아이들의 책가방 소리만을 기다리는 공간이 아닙니다. 그곳은 ‘바다를 배우는 교실’, ‘지역을 이해하는 책’, ‘공동체를 연결하는 광장’으로 재탄생한 것입니다.
이 공간이 주는 메시지는 단순히 건물을 재활용하자는 것이 아닙니다. 잊힌 공간에 새로운 의미를 입히고, 그것을 통해 사람과 마을이 다시 연결될 수 있다는 것 — 이것이 마암초가 우리에게 가르쳐 주는 진짜 교육입니다.
마암초는 여전히 교실입니다. 다만 이제는 교과서 대신 갯벌이 있고, 종소리 대신 파도 소리가 흐릅니다. 그리고 그 속에서 아이들은 환경을 배우고, 어른들은 마을을 다시 배우고 있습니다.
그렇게 폐교는 지금, 가장 살아 있는 교실이 되어가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