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북도 제천시 백운면에 자리한 옛 백운초등학교는 2008년 폐교된 후, 한동안 그 자리를 지키며 조용히 자연과 함께 퇴색해 가던 공간이었습니다. 하지만 2017년 이후 이곳은 책을 매개로 한 마을 문화 공간으로 다시 태어나, 지금은 독서와 창작, 공동체가 살아 숨 쉬는 특별한 장소로 주목받고 있습니다. 이 글에서는 폐교가 어떻게 ‘책마을 문화센터’로 바뀌었고, 그것이 지역과 사람들에게 어떤 변화를 일으켰는지를 이야기합니다.
백운초의 두 번째 이름, ‘책마을 문화센터’가 되기까지
제천시는 충북 북부권의 대표적인 자연 관광 도시이지만, 백운면은 인구 감소가 심각한 농촌지역 중 하나였습니다. 이 지역의 교육기관이던 백운초등학교는 2008년 학생 수 부족으로 폐교되었고, 이후 오랜 시간 동안 활용되지 못한 채 방치되어 있었습니다.
전환의 계기는 2017년, ‘책 읽는 마을 만들기’ 프로젝트에 이 학교 부지가 포함되면서부터였습니다. 제천시와 충북도교육청, 문화체육관광부가 공동으로 기획한 이 프로젝트는 폐교를 단순한 재건축 대상이 아닌, 주민 삶을 변화시킬 수 있는 문화공간으로 보자는 데서 출발했습니다.
옛 학교 건물은 리모델링을 거쳐 ‘책마을 문화센터’로 이름을 바꾸었고, 교실 하나하나는 책방, 어린이 독서 공간, 창작 공방, 소규모 도서 전시관 등으로 기능이 바뀌었습니다. 운동장은 지역 축제나 북페어, 작가 초청 북토크 등의 장소로 쓰이고 있고, 교직원실은 지역주민이 운영하는 북카페로 탈바꿈했습니다.
무엇보다 눈에 띄는 점은 이 공간이 외부 출판계 인사나 전문가의 손에만 맡겨진 게 아니라, 주민과 함께 기획하고 운영되는 모델이었다는 점입니다. 폐교가 ‘누구의 것도 아닌 채 버려진 공간’에서 ‘모두의 문화 공간’으로 거듭나는 기적이, 바로 이곳에서 시작된 것이죠.
책과 사람을 잇다: 독서문화 기반 공동체 프로젝트
책마을 문화센터의 핵심은 단연 ‘책’입니다. 하지만 단순히 책을 모아놓는 것이 아니라, 책을 중심으로 사람과 사람이 이어지게 만드는 플랫폼이라는 점이 특징입니다.
센터에서는 매달 ‘우리 마을 북클럽’이 운영되고 있으며, 이는 지역 주민뿐 아니라 인근 제천 시내 거주자들도 함께 참여합니다. 다과와 함께 책을 나누고 이야기하는 이 모임은, 고령화된 농촌 마을에 오랜만에 생긴 정기적 모임이자 소통의 장이기도 합니다.
또한 ‘1일 책방 주인’이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주민 누구나 하루 동안 책방 운영을 직접 체험해볼 수 있는 기회도 제공합니다. 이 과정에서 지역민들은 책에 대한 애정을 나눌 뿐 아니라, 자발적인 참여로 공간에 더 깊이 관여하게 됩니다.
지역 초등학생을 위한 ‘책으로 노는 토요일’ 프로그램도 인기입니다. 이 프로그램은 독서, 글쓰기, 만들기, 연극 등의 활동을 결합하여 아이들의 창의성과 감성을 동시에 자극합니다. 도시에서는 흔한 체험이지만, 농촌 지역에서는 드문 이 기회에 아이들도, 부모들도 기뻐합니다.
이러한 활동들은 단순한 문화소비를 넘어서, 지역민 스스로가 주체가 되는 책 기반 공동체를 만들어가고 있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갖습니다. 책은 그저 종이 묶음이 아닌, 백운면 주민들의 삶과 미래를 다시 연결해주는 매개체가 된 것입니다.
문화관광 연계로 살아난 마을의 경제적 가능성
‘책마을 문화센터’는 책만 있는 조용한 공간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오히려 ‘체류형 문화관광 모델’로서의 가능성을 활짝 열고 있습니다. 2020년부터는 충북문화재단과 협업하여 ‘책이 있는 주말여행’이라는 이름의 체험형 관광 프로그램도 운영되고 있습니다.
이 프로그램은 외지 관광객이 1박 2일 동안 백운면에 머물며 책마을 문화센터에서 독서와 창작 수업을 경험하고, 지역 식당과 전통시장, 주변 명소를 둘러보는 패키지 형식입니다. 특히 서울과 청주 등지에서 오던 중년 여성 독서모임들이 이 프로그램에 자주 참여하면서, 지역 숙박업소와 음식점, 소규모 카페 등에도 실질적인 소비 효과가 나타나고 있습니다.
또한 이 공간을 활용한 ‘소설 속 한 장면 만들기’ 같은 감성 사진 워크숍은 SNS를 통해 젊은 층에게도 입소문이 퍼지고 있으며, 청년 창작자들이 이곳을 촬영 장소로 찾는 경우도 증가하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인근의 유기농 농장과 연계하여 ‘책과 밥상’이라는 팝업 프로그램도 시도되고 있는데, 이는 지역 농산물과 식문화를 체험하며 책을 읽는 이색적인 체험으로 주목받고 있습니다.
즉, 백운초 옛터는 단지 독서를 위한 공간을 넘어, 문화 기반 마을 재생의 모델로서 실질적인 경제 순환까지 만들어내고 있는 셈입니다.
마무리: 폐교에서 열린 책 한 권이, 마을을 바꾸다
폐교는 공간의 죽음이 아니라, 다른 생명을 준비하는 시간일 수 있습니다. 충북 제천 백운면의 백운초는 ‘책’을 중심으로 다시 숨 쉬기 시작했고, 그것은 사람들을 다시 모이게 하고, 마을의 시간을 다시 흐르게 했습니다.
책마을 문화센터는 단지 아름다운 공간이 아닙니다. 그것은 사람을 잇고, 공동체를 회복하며, 문화를 매개로 지속가능한 삶을 기획하는 생태계입니다. 주민은 이 공간을 가꾸는 주인이자 사용자이며, 나아가 마을의 미래를 상상하는 공동 창작자들입니다.
이 작은 폐교는, 단 한 권의 책처럼 조용히 그리고 깊이 지역 사회를 변화시키고 있습니다. 그 변화는 지금도 현재진행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