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이슬람권에서 주목한 한지공예의 영성

by yunanara 2025. 5. 31.

이슬람 문화권에서 한국의 전통 종이, ‘한지’가 단순한 재료를 넘어 영적인 재료로 재조명되고 있습니다. 고요함과 명상을 위한 공간에 쓰이는 한지의 물성과, 제작과정에 담긴 철학이 이슬람 예술과 공명하면서 특별한 관심을 받고 있습니다.

이슬람권에서 주목한 한지공예의 영성
이슬람권에서 주목한 한지공예의 영성

1. 한국의 한지, 전통 그 이상의 의미


한지는 닥나무 껍질을 재료로 하여 만든 한국의 전통 종이로, 천 년이 넘는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일반 종이보다 훨씬 질기고 내구성이 강하며, 통기성과 흡습성이 뛰어나 오래 보존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역사적으로 고문서, 불경, 회화 등에 널리 사용되었습니다.

하지만 한지가 단순히 실용적인 종이에 머무르지 않고, 정신적·예술적 재료로까지 승화된 점이 이슬람권에서 주목받는 이유입니다. 이슬람 미술에서는 자연의 반복성과 규칙 속에서 신의 무한함을 느끼고, 그 안에서 정신의 정화와 침묵의 공간을 추구합니다. 한지의 질감과 광택 없는 은은한 색감, 그리고 수작업으로 이루어지는 제작 과정은 이러한 이슬람 미학과 철학적 접점을 만들어냅니다.

특히 이슬람 예술에서 자주 사용되는 조명 장식물(램프쉐이드)이나 기도용 공간의 벽면 마감재로 한지가 쓰이면서, 그 자체가 영적인 분위기를 창조하는 ‘소재의 언어’로 인식되고 있습니다.

 

2. 한지를 통한 명상과 신성의 공간 구성


최근 사우디아라비아, UAE(아랍에미리트), 쿠웨이트 등의 이슬람 문화권에서는 현대 건축과 전통 영성을 결합하는 실험이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 한국의 한지를 수입하여, 기도실 내부 조명 장치, 코란 보관함, 소규모 영성 명상실의 벽 마감재 등으로 사용하는 사례가 늘고 있습니다.

한지를 활용한 공간은 단단하면서도 부드럽고, 빛을 통과시키되 과하지 않게 산란시키며, 소리를 흡수해 정적이고 고요한 분위기를 조성합니다. 한 이슬람 디자이너는 “한지는 빛과 소리를 정화시켜 공간을 신성하게 만든다”고 평하며, 이를 ‘영혼이 머무는 재료’라고 불렀습니다.

이러한 한지의 활용은 단순한 소재의 수입을 넘어, 한지 제작과정에 담긴 수공예 정신, 즉 자연을 거스르지 않고 천천히 기다리는 태도까지 포함한 철학적 수용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는 이슬람 예술에서 매우 중요한 개념인 사브르(Sabr, 인내)의 미덕과도 맞닿아 있어, 많은 이슬람 문화 예술인들이 한지를 접하면서 깊은 내적 공감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3. 한지공예의 영적 세계화 가능성과 과제


이슬람권에서 한지가 영적 공간의 핵심 요소로 활용된다는 점은, 한지의 전통과 현대, 실용과 정신을 잇는 가능성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례입니다. 하지만 그만큼, 이 전통 공예가 세계적으로 쓰이기 위해선 몇 가지 과제를 안고 있습니다.

첫째, 제작 과정의 표준화와 수출 구조 개선이 필요합니다. 한지는 수작업으로 만들어지는 공예품이기에 대량생산이 어려운 측면이 있으며, 이슬람권에서 요구하는 할랄 인증 재료 사용 등도 검토 대상입니다.

둘째, 한지를 단순히 ‘디자인 자재’로 보지 않고, 그 속에 담긴 정신성까지 함께 설명할 수 있는 콘텐츠 개발이 요구됩니다.
일부 한국 문화재단에서는 이를 위해 이슬람 건축 디자이너와 협업하여 ‘한지와 명상’이라는 주제로 공동 전시와 워크숍을 개최하고 있으며, 중동 미술대학에서 한지를 주제로 한 졸업작품이 나오기도 했습니다.

셋째, 한지공예 전문가들이 직접 이슬람 문화권을 방문하여 재료에 대한 철학적 해설과 시연을 병행함으로써, 일방적인 수출이 아닌 쌍방향적 문화 교류가 더욱 강화되어야 할 것입니다.

이러한 흐름은 단지 종이 한 장이 가진 아름다움을 넘어서, 재료가 가진 이야기와 정신성까지 세계와 나누는 일입니다. 한지는 지금, 이슬람권에서 ‘눈에 보이는 전통’을 넘어서, 보이지 않는 세계를 감싸는 도구로 자리 잡아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따뜻한 질감은, 세계인의 마음을 감싸줄 새로운 문화 언어로 이어지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