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원의 본고장이라 불리는 영국에서 ‘한국식 정원’이 조용한 반향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자연을 가꾸는 것이 아니라 ‘존중하는 것’에 가치를 두는 한국 전통 정원의 미학이, 영국 원예 교육 현장에서 새로운 교과로 도입되고 있는 이유를 소개합니다.
1. ‘정원의 철학’을 가르치는 영국 왕립원예학교
영국은 오랜 정원 문화의 전통을 자랑하는 나라입니다. 정원은 단지 식물을 심는 공간이 아니라, 자연과 인간의 관계를 설계하고 사색하는 철학의 장소로 여겨집니다. 이런 전통을 이어온 곳이 바로 영국 왕립원예학교(Royal Horticultural School)입니다. 이곳에서는 정원 디자인과 조경학, 식물 생태학에 대한 고급 교육이 이뤄지며, 최근에는 세계 여러 지역의 정원 양식을 비교하고 연구하는 커리큘럼도 포함되었습니다. 그 중에서 주목할 만한 변화는 한국식 정원 양식이 하나의 교과목으로 독립되었다는 점입니다.
기존에는 중국식 정원과 일본식 정원이 소개되었으나, 최근에는 한국 전통 정원의 고유한 철학. 즉, 자연을 통제하지 않고 흐름 그대로 존중하며 마당을 구성하는 방식 - 이 새로운 정원 교육의 기준으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한국식 정원의 대표 사례로는 창덕궁 후원, 성락원, 백운동 원림 등이 소개되고 있으며, 왕립원예학교는 이를 통해 "정원은 자연을 보여주는 창(窓)이자, 인간의 겸허함을 드러내는 장소"라는 한국적 사고방식을 학생들에게 전달하고 있습니다.
2. 자연을 닮은 정원, 인간을 낮추는 공간
한국식 정원의 가장 큰 특징은 ‘꾸미지 않음’에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유럽식 정원은 대칭성과 조형미를 강조합니다. 정원을 통해 자연을 통제하고 질서를 부여하려는 사고가 강하게 반영되어 있습니다. 반면 한국식 정원은 자연의 흐름에 순응하고, 그에 따라 인간이 겸허해지는 공간을 지향합니다.
예를 들어, 나무를 자로 잰 듯 심기보다는 지형을 따라 굴곡 있게 배치하고, 연못은 정확한 원형이나 사각형이 아니라, 바람과 빗물의 흐름처럼 자연스럽게 만들어집니다. 돌 하나, 나무 하나에도 위계나 규칙보다 감성과 관찰을 우선시하는 미감이 담겨 있습니다.
이러한 점은 영국 내 원예 철학자들과 정원 디자이너들 사이에서 ‘생태 정원’의 이상적인 모델로 해석되고 있습니다.
영국 조경 디자이너 협회의 관계자는 한국식 정원에 대해 이렇게 평가합니다.
“자연을 꾸미지 않고 함께 머무는 것, 그것이 진짜 정원입니다. 한국식 정원은 정원이라기보다 하나의 철학 공간으로 느껴집니다.”
이러한 해석은 곧 정원 디자인의 윤리적 전환으로 이어지고 있으며, 한국식 정원은 이제 단순한 문화 소개가 아니라 ‘지속 가능한 조경 철학’으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3. 교육, 실습, 그리고 교류의 확장성
한국식 정원이 영국 원예교육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또 하나의 이유는, 실제 정원 조성 실습에 매우 적합하다는 점입니다. 유럽 정원의 경우 고정된 양식이 많아 창의적인 구성이 어렵지만, 한국식 정원은 장소와 자연환경에 따라 무한히 변주가 가능하여, 실습 수업에 참여한 학생들의 흥미를 자극합니다.
실제로 왕립원예학교는 2024년부터 한국의 조경가들과 협업하여 ‘한반도 풍경 정원’ 조성 프로젝트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이 프로젝트는 한옥의 마당 구성 방식, 돌담, 소나무, 담쟁이덩굴 등의 배치 원칙을 기반으로 실제 캠퍼스 내에 한국식 정원을 조성하고 학생들이 관리하는 방식으로 진행되고 있습니다.
또한 이 과정에서 한국의 조경 전문가들이 직접 강의를 하거나, 해외연수 프로그램을 통해 학생들이 한국의 정원 현장을 직접 답사하는 기회도 제공됩니다. 그 결과 한국식 정원은 이제 학문적 연구 대상일 뿐만 아니라, 생활 속 체험과 실천으로 확장된 교육 콘텐츠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한국식 정원이 가진 의미는 단순히 ‘동양적인 아름다움’에 머물지 않습니다. 그것은 사람과 자연이 공존하는 방식, 공간을 대하는 철학, 그리고 인간이 자연 앞에서 가져야 할 태도를 담은 조용한 교과서입니다. 영국 원예 교육에 스며든 이 정원은 앞으로도 더 많은 세계인들에게 조화와 존중의 가치를 전하는 공간으로 확장되어 갈 것입니다.